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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2016 페임랩 코리아] 불꽃튀는 과학 오디션

by 회사 다니는 약사 2016. 5. 4.

과학계의 슈퍼스타K이자, 과학토크쇼인 페임랩 코리아(FameLab Korea) 본선이 MBC 상암홀에서 열렸다.

영국에는 매년 '첼튼엄 과학축제'가 열리는데, 여기서 가장 인기있는 프로그램이 페임랩이다. 영국에서는 2005년부터, 한국에서는 2014년부터 매년 개최하고 있다. 2016년 페임랩 코리아 TOP11에 진출해 본선에 참가한 소회를 풀어본다.

 

 

 

 

페임랩의 묘미는 바로 '소통'에 있다. 전공자 외에는 잘 알지못하는 과학적 원리를 쉽게 설명해야한다. 특이한 규칙도 있다.

1. 발표 시간은 3분

2. ppt 등의 발표자료를 사용할 수 없고 간단한 몇 가지 소품만 사용

 

온라인 참가접수(3월), 발표 심사(4월)를 거쳐 TOP11을 선발한 후, 1박 2일의 마스터 클래스를 통해 '과학 소통'에 대해 공부/실습하고, 2016년 5월, 드디어 본선이 열렸다. 작년까지는 YTN에 방영을 했는데, 올해에는 MBC에 방영을 한다.

 

녹화시작은 오후 2시였지만, 아침 9시 15분이 소집시간이었다. 전날 저녁에 서울로 올라와서 영국문화원에서 제공해준 숙소로 갔다. 2인실이었는데, 룸메이트 언니와 나는 발표 준비로 부산했다. 서로에게 발표를 해보고 피드백을 받고 소품을 점검하고.. 나는 내 토크에 '감동' 요소가 없는 걸 계속 아쉬워하던 참이었다. 내 주제는 '유전자 정보를 이용한 맞춤의학'이었고, 룸메이트 언니가 같이 머리를 짜내줬다. 식물을 전공한 언니에게 맞춤의학에 대한 설명을 계속 해줬고, 언니는 마침내 '공감'과 맞춤의학을 연결지을 수 있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상태를 자세히 들여다보는 것이니 공감하는 것이 아니냐는 말이었다.

 

나는 언니의 말을 듣자마자 이마를 치며 노트북을 켰고 문장 만들기에 들어갔다. 마침내 맞춤의학을 '소통'과 연관지을 수 있었고 새벽 3시까지 자판을 두드린 끝에 4문장을 만들어냈다.

 

다음 날 아침, 예상대로 비바람이 몰아치고 있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숙소에 함께 묵었던 포항공대 3인방과 택시를 잡아탔다. 4명 중 3명이 캐리어를 끌고 있어서 낑낑대며 짐을 실었다. 비도 오고 바람까지 세게 불고.. 아주 물에 젖은 생쥐 꼴이 됐다.

 

 

 

 

무사히 MBC 방송센터에 도착해서 대기실에 들어갔다. 오늘 본선을 함께 치를 페임래버들을 만났다. 지난 4월에 1박 2일짜리 마스터 클래스를 함께 거치면서 많이 친해졌다. 다들 정말 똑똑하고 멋있는 동료들이다.

 

 

 

리허설을 위해 무대를 꾸며놓은 골든마우스홀에 들어갔다. 세계 페임랩 대회를 옮겨놓은 듯한 멋진 무대 세트였다.

 

 

 

 

이동 동선을 파악하고, 한 사람씩 순서대로 무대위에 올라가서 리허설을 했다. 다들 한 달 전보다 훨씬 향상된 모습이었다. 역시 준비를 많이 했나보다. 리허설이 끝나고 대기실에서도 계속 연습을 하다가, 직원 식당에 가서 점심을 먹고 메이크업을 받았다. 양희은 선생님(?)을 봤다(이 날 내가 본 유일한 연예인이었다) 1시 반이 되자 방청객들이 입장을 했고, 바람잡이로 페임래버 2기가 마술을 선보였다.

 

2시에 드디어 녹화가 시작됐다. MC는 2명 이었는데, 한 명은 MBC 아나운서였고 다른 한 명은 1기 페임레버 이상곤 선배였다. 이상곤 페임레버는 워낙 강연을 많이 다니고 방송도 진행하고 있어서 기대했는데 역시 아주 능숙한 말 솜씨를 선보였다.

 

순서는

1. 시니어챗

2. 페임랩 코리아

3.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강의

4. 심사평

5. 과학 커뮤티케이터 위촉상 수여 및 시상

이었다.

 

시니어챗은 올해 처음 생긴 프로그램이다. 40대 이상의 과학 전문가가 8분동안 발표를 하는데, 페임랩 코리아와는 다르게 발표자료를 사용해도 괜찮다. 특이한 점은 심사위원이 초등학생, 중학생으로 구성됐다는 것이다. 질의응답 시간에 어린 심사위원들이 진지하게 임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계시는 조흥래 선생님, 임웅묵 선생님과 이미 유명하신 이정모 교수님(서대문자연사박물관장)께서 시니어챗에 참가하셨다. 시니어챗이 끝나고 드디어 페임랩 코리아가 시작했다. 이전에 제비뽑기로 순서를 뽑았는데, 내가 1번이다. 두 MC의 페임랩 소개가 끝이나고 내 순서가 시작됐다. 내 소개 영상이 나오기 시작할 때, 무대 중앙에 섰다.

 

 

 

 

소개 영상은 학교에서 찍은 것이었다. PD, 카메라 감독이 조선대학교 약대까지 와서 내가 실험하는 모습, 제약산업학회 PIN 회의 모습, 친구들 인터뷰, 교수님 인터뷰 등을 찍어갔는데, 30초로 짧게 편집되서 나왔다. 영상의 마지막 장면으로 나의 웃긴 포즈가 나왔는데..... 역시나 방청객들이 웃었다. 나도 웃음이 빵 터져서 긴장이 좀 풀렸다.

 

'저는 왼손잡이 입니다'로 발표를 시작했다. 페임랩 코리아의 첫 순서인 덕분에, 내가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묘미가 있었다. 골든마우스홀의 공기가 쫄깃해졌다. 250여명이 나에게 집중하는 열기를 느꼈다. 내가 한 마디 한 마디 할 때마다 이해했다는 듯이 여기저기서 고개가 끄덕였다. 중학생으로 보이는 꼬마들부터 나이 지긋한 분들까지 반짝반짝이는 눈으로 경청해주셨다. 짜릿한 순간이었다.

 

 

 

 

 

 

 

유방암 세포에서 과발현된 HER2 수용체를 이름표로 표현했는데, 이름표가 등장하자 다들 '아하~'하는 반응이었다. 두 달 가까이 고민하고 노력한 보람이 있었다.

 

 

 

질의응답 시간이었다. 질문은 3개였는데 내가 예상했던 것이거나 알고있는 것이었다. 맞춤의약품의 단점은 없는지, 지금 맞춤의학 기술이 어디까지 와있는지, 맞춤의학이 적용되는 질병은 어디인지.

 

 

 

방송이 녹화되는 동안 아프리카tv의 공식채널인 곽방tv에 생중계됐다. 위 사진의 채팅창을 보면 '별도 자료 없이?'라는 말이 있는데, 사실 내 발표의 핵심은

'우리 주변에서 사용하는 물건'만을 사용해 설명하는 것이었다.

 

페임랩의 큰 특징은 ppt 자료 없이 간단한 소품만을 이용하는 것이다. 그래서 가급적이면 인위적이지 않은 소품을 사용해보려고 했다. 그 결과

유전자 -> 책

수용체 -> 이름표

이렇게 비유를 통한 설명을 만들어냈다.

 

이번 무대가 방송에 나간다는 것만으로도 특별했지만 나에게는 또 다르게 의미가 있었다. 방청석에는 휴가를 내고 서울로 올라온 어머니가 계셨다. 그 동안 수많은 발표를 했지만 어머니 앞에서는 처음이었다. 내가 실수 없이 끝낸 이 날의 발표를 어머니 앞에서 할 수 있어서 무척 기뻤다. 발표가 끝나고 쉬는 시간에 방송국 복도에서 어머니와 상봉을 했는데 안아주시며 '정말 잘했다'라고 하셨다.

 

내 순서가 끝난 후부터는 마음 편하게 다른 출연자들과 이야기하며 즐겁게 보냈다. 비록 입상은 하지 못했지만, 페임랩 예선 준비부터 이 날의 빛나는 무대까지 2달에 걸친 여정이 끝났다. TOP11에 진출한 덕분에 새로운 세계를 만났고, 페임래버가 된 후로 많은 변화가 있었다. 겨우 한 달 남짓 동안에 말이다.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과학을 왜 전해야 하는지, 과학 소통의 결과는 무엇일지 고민한 것이다. 본선 전에 나름의 결론을 내리고 싶었다.

 

 

 

 

페임랩 코리아의 가장 큰 매력은 '본선'이 끝이 아니라는 거다. 오히려 시작이다. 이제 과학 커뮤니케이터로써 대중과 소통할 기회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이니 유전자 검사니 이름도 어렵고 내용도 복잡한 개념들이 태어나고 있는 요즘이다. 전에 없던 새로운 것들이라 관련된 법안도 마련되지 않은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이럴 때일수록 대중이 관심을 가지고 사회 곳곳에서 토론이 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과학을 접하고 또 즐기는 기회가 필요한 사회다. 열심히 공부하고 콘텐츠를 개발해 과학 커뮤니케이터의 소명을 다 할 수 있게 노력할 것이다.